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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인대가 끊어져 버린 부상이었는데 이상민이 고통스러워서 눈물을 글썽거리고 그걸 보고 팬들이 울부짖는 모습까지 당시 뉴스를 탔다. 이렇게 되면서 프랜차이즈 스타를 헌신짝처럼 버렸다며 KCC구단과 허재 감독은 엄청난 비판을 받았고, 이상민의 빈자리를 채운 임재현은 임봉사라는 굴욕적인 별명까지 붙을 정도로 이상민보다 못한 활약을 보인 데다 이적한 이상민이 선봉장으로 그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KCC를 격파하는 상황까지 오자 이상민을 떠나게 만든 KCC는 희대의 뻘짓을 저질렀다는 말까지 듣게 되었다. 이후 1892년 1월 20일에 한 팀에 9명씩과 전후반 15분씩을 뛰는 농구 경기가 열렸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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